[표권향의 컬처판타지아] “돌아오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것”…뮤지컬 ‘광화문연가’, 죽음 앞에서 다시 만난 그 시절

표권향 2026. 9. 2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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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1분 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그리움’이라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깊은 감정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제목 그대로의 ‘광화문연가’를 비롯해 ‘소녀’ ‘가을이 오면’ ‘휘파람’ ‘붉은 노을’ 등 이영훈의 명곡은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연출은 “이명우라는 작곡가가 남기고 간 것들을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며 한 인간을 배웅하면서도 그를 끝까지 남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즉 페도라를 쓴 월하는 이 세계를 주관하는 집전자로 보시면 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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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의 명곡이 불러낸 눈물의 기억과 그리움
삶의 마지막 남은 시간, 가장 사랑했던 사람(순간)을 떠올리다
‘소녀’부터 ‘붉은 노을’까지…가장 따뜻한 추억 소환
11월15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공연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으로 추억을소환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오는 11월 15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사진 | CJ ENM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죽기 1분 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그리움’이라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깊은 감정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노래는 참 묘하다. 사람을 웃게 하고 울게 하며 때로는 분노케 하지만, 그 화마저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아름다운 가사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르는 것도 그래서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그리고 한때 곁에 있었던 누군가를 불현듯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때 그 시절을 다시 그리는 회상 속으로 스며든다.

‘광화문연가’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으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작품은 삶을 마감하기 1분 전의 ‘명우’가 시간여행 가이드 ‘월하’와 함께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지난 삶의 조각을 맞춘다. 이는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말 그대로 ‘돌아가는’ 기억 여행이다.

관객들의 기억 주파수를 맞춰 줄 ‘(중년) 명우’ 역 손준호와 이석훈, ‘월하’ 역 에녹·차지연·서은광, ‘수아’ 역 류승주와 선예, ‘시영’ 역 문진아와 박세미가 무대에 오른다. 이들과 함께 ‘(과거) 명우’ 역 기세중과 박희준, ‘(과거) 수아’ 역 김서연과 이은정, 그리고 ‘그대들’ 임춘길·이든·김서노가 추억을 소환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다섯 번째 시즌 주인공들이 이영훈 작곡가의 주옥 같은 명곡으로 올 하반기 전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사진 | CJ ENM

◇ 웃다가 울고, 울다가 박수치는 180분의 ‘기억 여행’

‘광화문연가’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빠지기 쉬운 단순한 노래 나열의 함정을 피했다. 제목 그대로의 ‘광화문연가’를 비롯해 ‘소녀’ ‘가을이 오면’ ‘휘파람’ ‘붉은 노을’ 등 이영훈의 명곡은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관객은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마주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추억을 되짚는 기억 속의 회상으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특히 작품의 넘버들은 추억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뒷모습, 그때는 몰랐던 감정,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보이는 관계의 의미를 꺼내 보여준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억은 훗날 자신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노래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놓지 않지만, 그 시간을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생을 떠나기 1분 전, ‘기억의 전시관’에서 눈을 뜬 주인공 ‘명우’가 인연을 관장하는 인연술사 ‘월하’를 만나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사진 | CJ ENM

◇ 죽음보다 사무치는 그리움…이영훈 음악으로 완성한 ‘퍼즐’

작품을 통해 유독 가슴에 남는 단어는 바로 ‘죽음’이다. 죽음이 슬픈 이유는 단순히 생이 끝나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을 남긴다.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무대 역시 기억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액자 형식의 상하 무대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놓인 인물들의 서로 다른 시선과 감정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단순히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마음과 갈망을 품고 있다는 점이 무대 구조를 통해 드러난다. 비어 있던 액자 같은 공간은 명우의 기억이 쌓이면서 하나씩 채워진다. 그 안에서 지나간 시간의 조각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 부모님의 그때 그 시절…다시 소년·소녀로 만든 무대

관객의 풍경도 작품의 정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중년의 관객들은 익숙한 노래가 등장할 때 콘서트를 찾은 듯 몸을 들썩이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뮤지컬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박수를 멈추기도 한다. 머리에 리본 핀을 단 채 소녀로 돌아간 듯한 관객들의 모습은 ‘광화문연가’가 단순한 추억팔이 공연이 아니라 실제 관객의 시간을 건드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은 계속 울리기만 하지 않는다. 관객이 잠시 무장 해제할 수 있도록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대사와 퍼포먼스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마음껏 박수치고 환호할 시간도 허락한다. 삼삼오오 모여 공연장을 찾은 오랜 동창생들, 팬클럽을 통해 만나 어느덧 언니와 동생이 된 관객들, 그리고 부모의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자녀들까지 관객층도 다양하다. 어린 시절 이후 오랜만에 자유로운 외출을 한 이들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핀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붉은 노을’ ‘옛사랑’ ‘소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오랜 시간 대중의 인생 플레이리스트로 꼽혀온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명곡을 바탕으로 극이 전개된다. 사진 | CJ ENM

◇ 명우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그대들’과 앙상블의 디테일

무대 곳곳의 의상 디테일 역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명우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그대들’ 세 캐릭터는 앙상블과 마찬가지로 앞치마와 점프슈트 형태의 작업복을 입는다. 이들은 월하의 산하에서 명우의 기억이라는 ‘빈집’을 채우고 비우는 일꾼들이다. 같은 팀이지만, 각자 다른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작업복의 세부 디자인에 차이를 뒀다.

이 과정에는 작품의 설화적 배경도 녹아 있다. 인연을 관장하는 월하노인 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현대적인 작업복에 한국적인 요소를 더했다. 앙상블과 달리 ‘그대들’에게만 색동 타이와 노리개를 더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모자 역시 캐릭터를 구분하는 중요한 장치다. 꽃 코르사주를 얹어 밝고 산뜻한 인상을 강조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키가 큰 인물에게는 실루엣을 더 길어 보이게 하는 모자를, 작고 동글동글한 인물에게는 그 개성을 살리는 형태의 모자를 적용했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명우’의 동행자이자 신적인 존재로 나서는 ‘월하’는 인연을 관장하는 인연술사이자, 추억을 되감아 주는 기억 마스터다. 사진 | CJ ENM

◇ 명우는 울고, 월하는 웃었다…엇갈린 감정의 숨겨진 결정적 연출

‘월하’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디테일은 더욱 흥미롭다. 월하는 명우의 기억 속 모든 장면에 모습을 드러내며 인물들을 지켜본다. 그런데 심각한 상황에서는 미소를 짓고, 오히려 유쾌한 장면에서는 아련한 얼굴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상황과 엇갈리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연출 의도가 있다.

월하는 죽음의 순간에 처음 나타난 신이 아니다. 명우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이미 곁에 있었던 동행자다. 무대 바깥에서 이야기를 해설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기억 속에 계속 머무는 존재로 표현된다.

명우가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월하가 희미하게 웃는 건, 그 아픔이 언젠가 아름다운 노래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반대로 명우가 가장 행복한 순간 월하가 아련한 표정을 짓는 건 그 행복의 끝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월하는 인간이 보는 현재와 신이 알고 있는 미래 사이의 시간차를 표정으로 보여준다.

이지나 연출은 스포츠서울을 통해 “월화의 엇갈리는 표정은 신의 시점과 인간의 시점 사이의 시차에서 나온다. 명우는 지나간 기억을 따라가며 지금 겪는 일처럼 아파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월하는 그 순간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를 이미 알고 있다”라며 “월하를 맡은 배우마다 이 순간들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니, 각각의 월하를 눈여겨보시는 것도 또 다른 관람의 재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월하의 페도라,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한 이유?

페도라 역시 월하의 역할을 구분하는 상징적 장치다. 이 연출은 “월하는 극 내내 명우를 안내하고, 놀리고, 곁을 지킨다”라고 소개했다.

월하는 명우와 같은 눈높이에서 기억을 함께 통과하는 ‘동행자’일 때는 페도라를 쓰지 않는다. 반면 기억의 문을 열고 닫거나 시공간을 넘나드는 순간에는 페도라를 쓴다. 이때의 월하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을 열고, 건네고, 닫는 의식을 집전하는 ‘신’이 된다.

페도라를 쓰는 장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 장면인 ‘서곡(그대와의 대화)’에서 페도라를 쓴 월하는 기억의 문을 열어 전시를 시작하는 동시에, 이 전시장의 주인이 될 이명우라는 작곡가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 ‘피날레(시를 위한 시)’ 역시 다시 한번 그에게 예를 갖추며 기억의 전시장을 닫는다.

이 밖에도 ‘애수’는 상처로 얼어붙은 기억을 위로의 무대로 도약시켜 시공간을 접한다. ‘광화문연가 rep.’는 시간을 초월해 젊은 명우의 마음을 중년의 시영에게 닿게 한다.

이 연출은 “이명우라는 작곡가가 남기고 간 것들을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며 한 인간을 배웅하면서도 그를 끝까지 남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즉 페도라를 쓴 월하는 이 세계를 주관하는 집전자로 보시면 된다”라고 전했다.

결국 ‘광화문연가’에서 페도라를 쓴 월하는 이 세계를 주관하는 집전자다. 한 인간을 배웅하면서도 그가 남긴 노래와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존재다.

대한민국 대표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함께 다섯 번째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 CJ ENM


‘광화문연가’의 공연이 끝난 뒤 극장을 나서는 마음은 의외로 가볍다. 눈물도, 그리움도, 지나간 사람에 대한 아픔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붙잡는 대신 오늘을 더 사랑하자는 마음이 남는다.

이영훈의 노래가 여전히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래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그때로 데려간다. ‘광화문연가’는 그 힘을 빌려 한 사람의 삶과 사랑, 죽음과 기억을 한 편의 무대 위에 다시 그려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가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 들게 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관객이 떠올리는 건 죽음이 아니라, 결국 ‘사랑’일지도 모른다.

옛 추억과 현재를 더 사랑하게 하는 ‘광화문연가’는 오는 11월 15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컬처판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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