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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단독] “공감능력 없는 AI, 최종판결 못해” 첫 이공계 출신 대법관의 일침
인공지능(AI)이 법원의 문턱을 넘어 들어오면서 사법부는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AI가 인간 판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의 최전선에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법관인 이숙연 대법관(58·사법연수원 26기)이 서 있다. 그는 “AI는 훌륭한 보조 도구지만 법관의 최종 판단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공감 능력은 인간 법관만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판결은 법관 고유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엔지니어를 꿈꾸며 포항공대 전체 수석으로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이 대법관은 졸업 후 포항제철에 입사했다. 1991년 어느 토요일 오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가두집회를 우연히 목격하고 참석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회사는 그 사실을 알자 해고를 통보했다. 그때부터 그는 노동법을 공부하며 회사를 상대로 직접 해고무효 소송을 냈다. 3심까지 모두 이겼지만 그는 복직을 거부한다. 대신 인생의 항로를 틀어 법관이 됐다.
공학도에서 법학도가 된 이 대법관은 이제 다시금 기술과 인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이 대법관은 17일 열린 아·태 대법원장회의에서 AI가 바꿀 법원의 미래를 발표하며 “AI는 사법부에 기회와 동시에 도전을 안긴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발표 직후 이 대법관을 만나 그가 하고 있는 고민과 해결의 실마리를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AI가 ‘생각하는 힘’을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A : 중요한 지적이다. AI에 의존하게 되면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잃게 될 수 있다. AI가 학습한 데이터는 결국 과거의 것이다. 법관 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건, 하늘 아래 똑같은 사건은 없다는 거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과거의 판례, 법률을 어떻게 오늘의 판단에 녹여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AI에게 위탁해선 안 되는 인간 법관의 몫이다.
Q : 복잡한 고민을 건너뛰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A : 교육과 시스템으로 의존을 경계하도록 해야 한다. AI 시스템을 설계할 때 AI가 인간 법관에게 대안을 제시하거나 부족한 점을 일깨워주는 데 그치도록 해야 하고, 판단을 대신 하도록 설계해서는 안 된다. 제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와, 사법연수원에서 5월 문을 연 인공지능교육센터가 이 점을 적극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는 특허법원 고법판사 시절인 2023년 법원 내 인공지능연구회를 창립하고 회장을 지냈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인공지능위원회는 ‘인간 중심 AI를 통한 사법정의 구현’을 목표로 단계별 사업부 AI 로드맵을 내놨다.

Q : ‘AI를 활용해 재판한다’는 사실이 국민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A : 그렇기 때문에 법원이 AI를 활용하는 목적과 범위를 공개해야 한다. 이미 특허법원 ‘AI 시범재판부’에서 활용의 목적과 범위를 밝히고 당사자 동의를 받아서 외부 상용 AI를 쓰고 있다. 또 필요한 건 설명 가능성이다. 만약 AI가 결정을 내리는 데 상당 부분 작용했다면 법관은 왜 이런 결과를 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Q : 판사가 AI로 확보한 시간은 어디에 써야 하는가.
A : 법정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데 투자해야 한다. 하급심에서 재판할 때 당사자들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밀려드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그러지 못해 아쉬웠던 적이 많다. 판결이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한다.
Q : AI는 사법 독립에 득인가, 독인가.
A : 양날의 칼이다. 사용 목적과 범위를 잘 설계하면 사건 본질에 다가갈 시간이 생긴다. 반면 지나치게 의존하면 사법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 사법 독립은 다른 국가기관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있지만, 판단을 대체할 수 있는 AI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있다.
Q :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법관만의 역할은 무엇인가.
A : 공감 능력이다. AI는 사람에게 아첨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이지리드(Easy-Read) 판결문’은 AI 기술로 만들었지만, 발달장애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열정과 성의가 바탕이 됐다. 기술을 어디에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공감 능력에서 출발한다. 최종 결론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인간 법관이다.
최서인·김예정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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