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문학-서사의 풍경을 걷다]완벽했던 절제의 선율, 치명적 아름다움 앞에 무너지다

경상일보 2026. 9. 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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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름다움은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가
-토마스 만과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분홍빛 바다와 텅빈 모래사장
여름 지날때면 생각나는 영화의 잔상
괴테의 사랑·말러의 죽음 모티프로 한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 원작으로
예술과 현실적 삶의 갈등 다뤄
말러의 음악 배경으로 아름다움 향한
금기된 열정과 파괴적 집착 담아내
▲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장면들.

여름이 지나갈 때면 생각나는 영화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해수욕객이 떠난 텅 빈 모래사장, 바다는 노을을 배경으로 연한 분홍빛으로 물들고 환영처럼 나타난 사랑하는 미소년은 이제 저곳으로 가야 할 때라는 듯 팔을 뻗어 바다 저편을 가리킨다. 그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쓰러진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마지막 장면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네오리얼리즘의 거장이자 영화적 탐미주의자로 불리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1971년에 만든 영화이다.
▲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장면들.

1912년에 발표한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노작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가 갑자기 떠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베니스에 갔다가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 그에게 매혹되어 콜레라가 도는 베니스를 떠나지 못하고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예술가의 자기 성찰, 창작 의식, 그리고 예술과 현실적 삶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예술가 소설의 대표작이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쓰게 된 여러 계기를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중 하나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사랑 이야기다. 괴테는 74세였던 1821년, 17세의 울리케 폰 레베초프에게 사랑을 느꼈고, 이 경험은 훗날 ‘마리엔바트의 비가’로 이어졌다.
▲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장면들.

또한 1911년 5월에 세상을 떠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죽음과 그해 베니스 리도에서 휴가를 보내며 아름다운 소년 블라디스와프 모에스를 본 경험도 작품의 집필 동기가 되었다.

영화는 소설의 기본 줄거리를 따라가면서도 매체의 특성에 따라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작가이지만 영화에선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나온다. 토마스 만은 구스타프 말러의 외모와 이름을 아셴바흐를 형상화하는 데 활용했는데, 비스콘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셴바흐 자체를 말러를 연상시키는 작곡가로 재창조했다.
▲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장면들.

영화에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비롯한 그의 음악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데, 음악은 주인공의 내면적 파멸과 욕망을 청각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독백과 서술자의 철학적 설명을 통해 미, 양심, 예술가의 윤리, 미학 이론 등을 텍스트로 풀어낸다. 영화는 시각 매체인 만큼 내면의 독백을 대폭 줄이고, 아셴바흐가 타치오를 바라보는 시선과 베니스라는 도시의 황량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로 대체한다.
▲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장면들.

카메라는 느린 줌인 기법을 통해 주인공의 은밀한 시선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타치오의 얼굴과 표정, 몸짓, 행동을 따라가는 아셴바흐의 관음적이고 감각적인 열망을 관객 역시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설에서 타치오는 완벽한 헬레니즘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존재다. 아셴바흐는 타치오를 통해 미의 완벽한 형상, 혹은 예술적 완성의 이상을 바라본다. 비스콘티 감독은 스웨덴 출신 배우 비요른 안데르센을 통해 이러한 미의 관념을 실체화했다. 영화 속 타치오는 아셴바흐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미소를 짓는 등 그의 욕망을 자극하는 능동적이고도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미소년의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아찔하게 표현한 비요른 안데르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겪은 과도한 관심과 성적 대상화는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 그는 음악과 연극을 비롯한 활동을 이어가며 영화배우라는 직업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2021년 발표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은 그가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 겪은 명성과 그 후유증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이다.
▲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장면들.

영화에선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함과 콜레라가 덮친 베니스의 쇠락해가는 풍경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호텔과 해변의 우아한 휴양객들 사이로 전염병의 소문은 은밀하게 퍼져나가고, 그 소문처럼 아셴바흐는 타치오의 뒤를 좇는다.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하얗게 화장한 아셴바흐의 모습은 영화 초반 그가 만난 분장한 어릿광대를 연상시킨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어릿광대처럼 되는 것일까. 혹은 그 하얀 얼굴이 이미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일까.

아셴바흐가 말러를 모델로 한 만큼 영화에는 말러의 음악이 짙게 깔려 있다. 영화 속 회상 장면에서 아셴바흐는 청중 앞에서 말러의 교향곡 3번 4악장을 지휘한다. 이 악장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운데 ‘밤의 노래’를 알토 독창과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성악 악장이다. 깊은 고통과 세계의 비밀, 그리고 영원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는 철학적이고 무거운 곡이다. 하지만 이 지휘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청중들은 아셴바흐의 곡 해석이 난해하고 지루하며 생명력이 결여되었다고 야유를 퍼붓는다. 친구 알프레도는 아셴바흐의 음악을 가짜이자 죽은 예술이라 몰아세운다. 그는 아셴바흐가 고수해 온 아폴론적 이성과 절제의 음악을 비판하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광기, 곧 디오니소스적인 생명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연주회의 실패와 친구 알프레드의 준엄한 비판은 아셴바흐라는 예술가의 내면에 이미 균열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베니스에서 그가 소년 타치오에게 사로잡힌 것은 갑작스러운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평생 이성의 틀 안에 가두어두었던 감각적 생명력이 알프레드의 예언대로 한순간에 폭발하며 그를 삼켜버린 비극적 귀결이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콜레라라는 전염병의 유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토마스 만이 베니스를 방문했던 1911년 5월 베니스에서는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었고, 만은 그 상황을 직접 접했다. 이 경험이 소설 속 전염병의 모티프에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심한 설사와 구토, 급격한 탈수를 일으키는 콜레라는 문학적으로 종종 금기된 욕망, 본능적 탐닉, 그리고 도덕적 타락의 은유로 읽힌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도 도시 전체를 잠식하는 콜레라와 소년 타치오에게 느끼는 아셴바흐의 금기된 열정, 아름다움에 대한 파괴적 집착이 서로 평행을 이루며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글·사진=송은숙 시인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