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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호박꽃 튀김을 해먹는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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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정말 힘들었다.
“올여름 호박꽃 한번 못 먹어봤네.”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호박꽃 튀김 먹어봐.” 남편이 튀긴 호박꽃을 먹고 로제를 한 모금 마시더니 숨을 돌린 표정이 된다. 그냥 호박꽃, 방아꽃, 메밀꽃, 박꽃, 원추리꽃, 밭에 핀 꽃들 거둬 와서 아름다운 튀김을 해먹으며 가볍게 한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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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 편

올여름 정말 힘들었다. 어떻게 포도를 따고 와인을 담갔는지 모르겠다. 찌는 더위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바람이 부니 좀 살 것 같다. 이제 숨을 쉬겠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밭에 사는 나무들이 하는 말이다. 그래, 올여름 너무 더웠다. 여름 내내 농부는 밭에 가면 수영장에 갔다 온 것처럼 땀에 젖어서 나왔다. 나무에도 농부에게도 안쓰러운 여름이었다.
그런데 서늘한 바람이 분다. 농부라면 이 바람과 가을볕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알 것이다. 내 인생에서 9월이란 달을 이렇게 고맙고 특별하게 맞이한 적이 있을까. 농부는 예초기를 짊어지고 밭으로 간다. 그 더위에도 잘 크는 건 잡초뿐이다. 아니, 또 다른 것이 있다. 호박이다. 여름은 가고 밭에 남은 건 호박들이다.
정성을 들였던 고추와 감자, 토마토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심지도 않은 호박이 퇴비 더미에서 씨앗을 내려 잡초를 뒤덮고 버드나무를 올라타고 뻗어가더니 호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너무 좋은 것을 애타게 바라보면 망치게 되는 건 인간사나 농사나 똑같은가보다.
“올여름 호박꽃 한번 못 먹어봤네.”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더위 때문에 많은 것을 놓쳤다. 쓸모없지만 즐거운 것을 해볼 여유가 없었는데, 날이 서늘해지니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호박꽃 옆에 원추리꽃도 보이고 부추꽃과 박꽃도 보인다. 이것으로 무엇을 해먹을까, 생각하며 포도밭 여기저기에 보이는 꽃들을 딴다. 씨가 맺히기 시작한 방아꽃도 따고 메밀꽃도 몇 줄기 딴다. 서늘한 기온에 새잎이 나오기 시작한 쐐기풀 잎도 몇 장 딴다. 쐐기풀 가시에 찔려 손가락이 따끔따끔한데도 기분이 좋다.
꽃들을 따는데 좋은 냄새가 날아온다. 풀 베는 냄새다. 막 베어낸 풀 냄새보다 좋은 향이 있을까? 없다! 남편은 쓰러진 나무를 세워서 묶고 포도나무 잎에 붙은 벌레를 떼어낸다. 9월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있을까? 없다! “9월아, 왜 이제 왔니?” 나는 이 계절을 꼭 껴안는다.
꽃들을 씻어 묽은 반죽에 살짝 적셔서 튀겨낸다. “이거 한번 마셔봐.” 남편이 8월 말에 수확해서 한창 발효 중인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내온다. 잔 속에 찰랑이는 로제를 한잔 쭉 마셔본다. 콕콕 강렬하게 쏘면서 한창 일하고 있는 효모 향이 진하게 난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면 ‘양조장 9월은 와인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호박꽃 튀김 먹어봐.” 남편이 튀긴 호박꽃을 먹고 로제를 한 모금 마시더니 숨을 돌린 표정이 된다. 농사도 하늘이 도와야 하지만 와인도 하늘이 도와야 한다. 요즘 밭에 갈 때면 자주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산에 갈 때면 입구에서 늘 합장 절을 하고 나올 때도 절을 하는 사람이다. 농사를 짓다보니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농사, 항상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첫 서늘한 바람을 맞이한 이 계절엔 하늘에 기원하는 애타는 마음 같은 건 잠시 잊어야겠다. 그냥 호박꽃, 방아꽃, 메밀꽃, 박꽃, 원추리꽃, 밭에 핀 꽃들 거둬 와서 아름다운 튀김을 해먹으며 가볍게 한잔한다. 농부라면 그럴 권리가 있다.
글·사진 신이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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