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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아 만평 ‘안마봉’] 비례대표제 논란 소환한 ‘용혜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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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각종 의혹과 논란을 일으킨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9월 13일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다.
물론 장관을 겸할 수는 있지만, 많은 의혹과 논란의 당사자인 그가 장관 등 국무위원이 되면 의원직을 사퇴하는 비례대표 관례를 깬다는 말에 언론의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용 후보자 임명 반대 여론이 60% 이상 나온 걸 감안하면, 용 의원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께 송구하다고 할 게 아니라 2주간 ‘소수 정당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며 머리를 아프게 한 국민께 송구하다고 했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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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사퇴 사흘 전, 용 의원은 장관·의원 겸직은 법률이 허용한다는 취지로 ‘투잡’을 유지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물론 장관을 겸할 수는 있지만, 많은 의혹과 논란의 당사자인 그가 장관 등 국무위원이 되면 의원직을 사퇴하는 비례대표 관례를 깬다는 말에 언론의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장관직은 던지고 의원직은 유지하는 길을 택했다.
한발 더 나아가면 이번 논란은 ‘기형적 위성정당’이 낳은 폐단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관련 논의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국회 구성을 민의(民意)에 가까워지도록 비례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실상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다. 2019년 당시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을 단독으로 통과시키기 어려워지자 법안 캐스팅보트를 쥔 군소 정당을 참여시킨 게 발단이었다.
용 의원의 기본소득당은 이 제도의 허점을 통해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했다. 비례 의원 의석 배분 조건인 당 지지율이 3%에 못 미치는데도 두 번이나 원내에 진출한 이유다. 원칙과 꼼수가 민의를 왜곡한 사례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제도는 또한 그동안 꿋꿋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체성을 지킨 소수 정당을 ‘2중대’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거대 정당에 잘 잘 보여야 다음 총선을 기약할 수 있으니 침묵할 수밖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용 후보자 임명 반대 여론이 60% 이상 나온 걸 감안하면, 용 의원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께 송구하다고 할 게 아니라 2주간 ‘소수 정당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해 달라’며 머리를 아프게 한 국민께 송구하다고 했어야 옳다.
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
1932년
78만 원이 사라진 평양 ‘대도난 사건’

사건은 당시 큰 화제가 됐고, ‘신동아’는 그해 11월호 ‘월별 사건 만평’에서 이를 한 해의 주요 사건 가운데 하나로 다시 소환했다. 그림 속 인물은 돈 자루를 등에 멘 채 우스꽝스럽게 달아나지만, 이 액수는 보통 사람이 평생 일해도 손에 쥐기 어려운 거액이었다.
당시 주범은 평양의 유곽 ‘소나무집(松の家)’ 주인 사나다 진키치와 그 일당이었다. 유곽을 운영하다 큰 빚을 진 주인 사나다는 전직 은행 직원 등과 공모해 손 드릴을 이용해 금고문을 뚫었고, 일본은행권 100원짜리 100장, 10원짜리 1000장, 조선은행권 100원짜리 6100장과 10원짜리 1만5000장 등 합계 78만 원을 훔쳤다.
일설에는 사나다가 운영하는 유곽 창기의 신고로 범인 일당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평양 경찰은 ‘과학수사’ 결과 일당 7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어쨌든 경찰은 여러 곳에 나누어 숨겨둔 돈을 찾아내 76만9162원88전을 회수했다. 남은 1만837원12전의 행방은 계속 추적했다.
조선총독부 조사에 따르면, 1929년 조선 성인 남성 노동자의 하루 평균임금은 약 1원이었다. 일본인 남성 노동자 일당은 2원32전을 받았다. 하루 1원을 기준으로 하면 78만 원은 78만 일분의 임금이다. 한 사람이 1년 300일씩 일해도 약 260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다. 당시 쌀 한 석이 대략 20원 안팎이었으니 수만 석의 쌀을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현금은 왜 평양의 은행 금고에 있었을까. 1930년대 평양은 경성 다음의 제2도시 자리를 두고 부산과 다투던 대도시였다. 조선 북부의 상업·공업·교통·금융이 교차하는 중심지로, 경의선을 축으로 경성·신의주·만주와 연결됐다. 평양은 남포와 평안도 내륙의 물자와 자금까지 흡수했다. 평안도 일대의 광업과 농산물 유통, 철도 운송에 더해 메리야스와 고무 제품 등 조선인 자본의 제조업도 성장했다.

그러나 1929년 세계대공황 이후 조선의 경제 사정은 빠르게 악화해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고 고용은 불안정해졌으며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하락했다. 화려한 상점과 은행, 요릿집이 들어선 도시 한편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하루 1원 안팎의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이어갔다. 78만 원이 당시 사람들에게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은행은 식민지 조선의 통화와 금융 질서를 떠받친 중앙은행이었다. 그런 은행의 금고에서 거액이 사라진 일은 일제가 내세우던 치안과 금융 관리의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일제 경찰은 이 사건을 철저히 숨겼다. 일제 통치의 권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의 공개 시점과 범위 역시 관리 대상이었다.
‘신동아’의 만평은 이 복잡한 현실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돈 자루를 멘 범인은 희극적으로 달아나지만, 그 뒤에는 세계대공황 이후의 궁핍과 자금이 빠르게 돌던 평양, 그리고 거액의 금융사고를 통제했던 식민 권력이 겹쳐 있다.
‘신동아’가 이 사건을 한 해의 주요 장면으로 남긴 것도, 그 엄청난 액수가 당시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으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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